공산산야초효소(시약)요법연구원

벽곡이야기

Teaman 2013. 10. 19. 21:11

 

인간의 숙원 중 가장 큰 것은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즉 오래 사는 것이다.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해 황제가 된 秦始皇(진시황)은 당시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었다.

그는 늙지 않고 영원히 살고자 徐福(서복)이라는 사람한테 不老草(불로초), 不死藥 (불사약)을 구해 오라고 시켰다. 그러나 서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시황은 일종에 사기를 당한 것이다. 결국 49세란 그렇게 많지 않은 나이에 路上 客死(노상 객사)로 최후를 맞았다.

지난 날, 사람들이 종교를 믿은 가장 큰 동기도 永生不死(영생불사)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것을 가장 드러내주는 종교가 道敎(도교)다. 道敎는 老子(노자) ․ 莊子(장자) 사상에서 출발, 미신적인 성격이 짙다. 사람들이 도교에 빠지게 된 것은 주로《莊子》의 여러 구절들 때문이었다. 《莊子》「大宗師(대종사)」편은 사람이, 일종의 심호흡법인 行氣法(행기법)을 행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延年不死ㆍ연년불사)고 전한다. 또 그 책「逍遙遊(소요유)」편은 묘고야산에는 神人(신인)이 살고 있는데 그는 바람과 이슬을 먹고, 구름을 타고 다닐 수 있다 한다. 사람들은 그런 말들에 혹해 자신도 신선처럼 늙지 않고, 죽지 않기를 꿈꾼 것이다.

우리의 옛 기록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종종 나온다.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젊은 여자가 머리가 허연 노인을 크게 꾸짖으며,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을 본 그 사람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분개하자 그 여자는 “나는 仙藥(선약)을 먹어 지금 나이 2백 살인데도 이렇게 늙지 않고 있는데 이 아들 녀석은 시키는 대로 약을 먹지 않아 여든 살 밖에 안 됐는데 이 모양이라 꾸짖고 있다”고 하더란다.

신선이 되려면 辟穀(벽곡)이라고 해 火食(화식)을 하지 않고 眞丹(진단), 芒硝(망초), 茯苓(복령)을 찧어 白臘(백랍)과 함께 쪄 만든 환약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洪萬宗(홍만종)의《海東異蹟(해동이적)》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郭再祐(곽재우)도 亂(난)이 끝난 후 신선이 되겠다며 산에 들어가 하루에 松花(송화) 한 조각 씩만 먹고 살았다 한다.

그런데, 신선처럼 돼 늙지 않고 영원히 살려다 오히려 죽음을 재촉한 경우도 많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唐(당) 太宗(태종) 등 다섯 명의 중국 황제는 불로불사의 祕藥(비약)이라는 丹藥(단약)을 장복(長服)하다 죽었다 한다. 그 약의 主성분은 수은과 납이었다는데, 그것을 그렇게 장기간 먹었으니 命(명)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앞서 이야기한 ‘莊子의 말들은 다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느니, 神人(신인)이 산다느니, 至人(지인)이 있다느니 한 것은 모두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理法(이법)에 따라 살면 신선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는 인간 생명의 有限性(유한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莊子》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莊子》「盜跖(도척)」편에 보면 “사람의 명은 오래 살아야 백 세고 웬만큼 사는 사람은 80세, 그렇지 않으면 60세 밖에 못 산다”고 하고 있다. 앞서 永生不死 운운한 것은 사람들에게 道(도)에 어긋나지 않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不羈·불기) 삶을 사는 것이 곧 신선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의 先人(선인)들 중 눈을 밝게 뜨고 있은 분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桓檀古記(환단고기)》는 ‘한 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린들 무엇하리’라고 하고 있고, 우리 속담도 ‘한식(寒食)에 죽으나 청명(淸明)에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寒食과 淸明은 보통 하루 차이다). 그러니까 얼마 더 살고 덜 살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망스럽지만 오래사는 秘法이란 없다. 다만 유한한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나는 한 순간, 한 순간을 보람 있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 바로 그 ‘잘 사는’ 방법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法頂(법정) 스님이, 살 때는 충분히 살고 죽을 때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도 그런 의미에서 한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