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스크랩] 56 이사람│박민정 VS 오사다 사치코

Teaman 2007. 10. 13. 21:02

한국 여성의 '와비차'와 일본 여성의 '백운옥판차'

 

편집부


국에서 최초 상품으로 만들어 유통한 차가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조선시대 명맥을 유지하던 떡차를 조사하러 전라남도 강진으로 내려갔던 일본인 이에이리(家入一雄)는 조선의 또 다른 차인 백운옥판차를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이에이리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여성 오사다 사치코가 그 뒤를 이어 백운옥판차가 생산되었던 강진을 찾아 〈조선 말기 전라남도지방의 음다풍습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한국 차계에 놀라움을 사고 있다. 한편, 일본 와비다도의 다성인 센리큐(千利休)의 제자 야마노우에노 소지(山上宗二)가 쓴 다서를 연구하는 한국인 여성이 있어 이목을 받고 있다. 박민정은 야마노우에노 소지의 저서 《산상종이기(山上宗二記)》의 재조명을 통해 와비다도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망하는 논문을 썼다.
한국과 일본의 차문화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두 여성의 만남을 《차의 세계》가 마련했다. 좌담 진행은 차 연구가이며 창원문화재연구소장인 강순형 씨가 맡았다.

 

박민정 씨는 《산상종이기》를 통해 일본 차의 전면을 그려냈다.

강순형: 한국의 중요한 차 역사 사료인 1937년 이에이리(家入一雄)가 썼던 《조선의 차(茶)와 선(禪)》에 나타난 풍습을 2000년이 도래한 시기에 다시 추적해 보는 작업을 한 일본인 여성 오사다 사치코(長田幸子) 씨를 이 자리에 모셨다.
또 한 분은 한국 여성으로, 일본의 와비차의 계보를 세운 야마노우에노 소지(山上宗二, 이하 소지)의 차인 정신을 연구해 〈산상종이기(山上宗二記)에 나타난 다인관(茶人觀)〉이라는 논문을 쓴 박민정 씨이다. 먼저 두 분 각자 타국의 차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차의 고장 시즈오까(靜岡) 출신인 오사다 사치코 씨는 어떤 계기로 한국 차를 연구할 생각을 갖게 된 것인가?
사치코: 어학 연수차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전통차는 대추차, 인삼차뿐인 줄 알았다. 외가에서 차 농사를 하고 있었고, 시즈오까에서 살 때만 해도 물 마시 듯 차를 마셨기 때문에 차가 소중한 줄 몰랐다.
《차의 세계》를 통해 한국에도 녹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 녹차에 빠져들게 되었다. 한국 최초 상품이었던 백운옥판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 논문을 쓰게 된 것도 한국의 전통차로 녹차가 있다는 발견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박민정: 사치코 씨와 비슷한 경우이다.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일본 문화를 생활 속에서 체험하면서 한국과 다르게 발전한 일본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다도 우라센케(裏千家) 서울출장소의 정월 다회(茶會)에 초대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차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강순형: 사치코 씨는 강진을 방문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이한영과 이에이리에 대해 알고 있었던가? 이에이리가 이한영을 만났을 당시, 일본에는 떡차가 없었는데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오사다 사치코 씨는 이한영의 백운옥판차를 중심으로 남도지역의 음다풍습을 적나라게 그렸다.

사치코: 이에이리는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 나와 있는 당나라 떡차의 맥과 전통이 조선에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자료 조사차 강진군에 왔다 백운옥판차를 알게 되었다. 백운옥판차는 최초로 시중에 유통된 녹차인데, 이에이리는 이제까지 조선에서 보았던 녹차와는 다른 백운옥판차를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앞면에는 백운옥판차라고 쓰여 있고, 뒷면은 차꽃 그림이 녹색 잉크로 찍힌 포장용기 안에 담긴 차를 그는 상등품 작설차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 이에이리로서는 조선에서도 상품의 차가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강순형: 이에이리의 책에 나와 있는 백운옥판차의 제조 과정과 상품 포장을 직접 해보았다고 했는데, 그가 기록한대로 60g이 들어가는지 궁금하다. 상품을 포장했던 그림이 차꽃인지 매화나무 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사치코 씨 생각은 어떠한가.
사치코: 《조선의 차와 선》에 보면 백운옥판차에 대한 포장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10.6×23×3.6(높이)cm로 네모난 소나무틀의 가운데를 6.1×15.7×2.1(깊이)cm로 파낸 네모 홈에 전체를 쌀 천 끈과 포장지 깐 바닥에 얇은 비자나무판을 놓고 대나무테를 돌려 상자 틀을 만든 다음 종이를 걸쳐 깔고 차를 담으면 정량 60g이 들어간다고 했지만, 실제로 만들어 본 결과 30~35g 정도가 고작이었다. 포장 용기 부분까지 차를 다 채워도 56g이다. 포장지 그림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한 연구가 뒤따라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강순형: 《산상종이기》는 판본이 여러 종류가 있다고 알고 있다.
소지가 11본을 다 쓴 것인가?
박민정: 그렇다. 소지가 히데요시에게 직언한 죄로 추방당하여 지금의 교토지방에서 동경지방으로 유랑생활을 하던 중에, 자신에게 와비다도를 전수받고자 하는 10여 명의 후배 차인들을 위해 직접 작성한 것이다.
전수받는 차인에 따라 구성과 내용상에 의도적인 차이를 두었기 때문에 11본이나 된다고 알고 있다.


강순형: 공통된 질문이다.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 사람의 와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체득하기는 어렵다. 사치코 씨가 일본차를 우리나라 사람에게 설명할 때 와비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 말뜻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사치코: 한국 사람에게 '와비'에 대해 말한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박민정: 와비다도 또는 와비차에서 '와비'라는 뜻에 대해 기본적으로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와비의 어원에서 찾아 본다면 첫째는 소박하고 차분한 멋을 나타내고, 둘째는 쓸쓸하고 불완전한 멋이다.
또 《산상종이기》를 통하여 이해한 와비는 호화로운 명물다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정신적 수행을 하는 차로서 이해할 수 있다.


강순형: 예민할 수도 있는 타국 차문화에 대해 깊이 있고, 애정 어린 논문을 발표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린다. 사치코 씨와 박민정 씨 모두 상대의 차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면서 각자의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국의 차문화를 다른 나라에 전파하는 위치에 선 연구자들로서 폭넓은 교류의 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두 분의 연구 성과에 커다란 기대를 걸어본다.

출처 : 허공처럼살자
글쓴이 : 虛 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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